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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스티그마

구릉 진 턱, 제 얼굴에도 있더라고요 / 세월 가며 깊어진 주름이어요 / 새날 오기를 기다리어요 / 눈뜨는 매일이 새날이어요 / 깊어진 골에 씨를 뿌리고 / 봄을 기다리려고요 / 꽃 필 날을 손꼽으면서요 // 더디기도 하지요 / 쓰러지기도 하겠죠 / 더러는 밟히기도 할 거예요 / 내려다보는 하늘, / 올려다보는 보는 눈길 / 피어나는 흔적이 보고 싶어요 // 여러 소리 어울리면 / 새로운 소리가 되는 줄 알았어요 / 밀려오는 파도처럼 한 소리로 오는 줄 알았어요 / 여러 소리가 하나가 되기 어려운 가 봐요 / 나뭇가지처럼 더 작은 가지로 자라 / 저마다의 목소리가 되는 걸 알았어요 // 구릉 진 턱에 바람이 불어요 / 깊어진 주름에도 파도가 와요 / 당신 손으로 턱을 만들고, 주름이 깊어갔어요 / 피려고, 덮으려 애를 쓰면 감춘 아픔이 서러워 / 녹아 내리는 골이 시려요 / 밤마다 잔가지처럼 뻗어간 사유 / 깊을수록 쩍쩍 갈라지는 몸 / 그래야 동쪽 하늘에 아침이 오곤 했어요 // 눈발이 세찰 땐 가지로 울고 / 타는 햇살엔 잎사귀를 말며 숨 쉬지 않았어요 / 하늘로 토해낸 붉게 물든 그리움은 / 내 안으로 그어낸 상처가 되어 밤이 저물었어요 / 두 팔로 안을 수 없는 큰 동그라미 / 강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는 연어 / 다른 시간을 본능처럼 낳고 있어요 / 동그라미 끝을 이어 마무리 못하고 / 잠들지 못하는 시간 가슴에 절이며 / 깊어진 주름을 쓰다듬어요     깊은 숨으로 열리는 아침을 맛있게 마신다. 하늘의 신비, 땅의 생명을 어우르며 오는 시간 아닌가. 입춘이 지나가는 아침 향기는 청명하고 맑았지만, 난 뒤를 돌아 지나가는 겨울을 보고 말았다. 별들의 수를 세며 이름을 기억했던 날들을 보았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옷가지와 그림도구를 챙겨 삼척으로 떠났었다. 이른 아침 정라진을 떠난 통통배는 울릉도를 향하고 있었다. 일행 4명은 천신만고 끝에 배에 오르고 언제라도 꺼질 것만 같은 엔진 소리를 들으며 기대와 두려움 속에 있었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나뭇잎처럼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배가 신기하기도 했다. 등이 검은 작은 고래가 한동안 배를 따라와 무료함을 덜어주기도 했다. 동해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였던 윤슬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동해는 크고 막막했지만 신비롭고 자유로웠다. 사방이 물이었고 배와 그 안에 사람들은 존재도 없었다. 물에도 지탱해 주는 뼈가 있을까? 혹 뿌리가 있을까? 동해는 어린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만질 수 없지만 형태로 존재케 하는 보이지 않는 엄청 큰 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네의 작은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마주한 집들이 보이는 지척의 그곳에서도 오랫동안 행복했었다. 그곳의 물결은 구불한 선이었고 때론 수많은 점들이었다.   나는 지금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너른 바위에 앉아있다. 호수라기보다 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운타운 마천루에 접한 미시간호수가 아니라 Sheridan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다가갈 수 있는 미시간 호수. 가끔 동네 사람이 지나가다 들러 노을을 즐기는 그런 호숫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 미시간 호수. 파도를 바라보다 물결 속으로 빠져든다. 먼 곳에서 가까워질수록 형체는 크고 선명했다. 큰 삼각형 주변으로 작은 삼각 모양들이 춤추듯 촘촘히 채워져 밀려왔다. 깊은 물의 뿌리로부터 작고 투명한 포말이 몰려와 해변에 부딪혀 사라지곤 했다.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말하기보단 뿌리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삶도 보이는 것보단 감춰진 것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도 여전히 머리가 끄덕여진다. 파도 소리가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음색의 높낮이를 가지고 하늘소리로 마감하는 호수의 하루에도, 젊은날 동해의 윤슬 속에도, 너른 바위에 앉아있는 나에게도 보랏빛 흔적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미시간 호수 엔진 소리 호수 건너편

2024-02-2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코스타리카로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는 자연을 느끼고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서였다. 코스타리카에서 쓰는 인삿말 중에 “프라 비다(pura vida)!”, 즐거운 삶!이라는 말이 있다. “코모에스타”는 안녕하세요라는 일반적인 말이지만, 프라 비다는 삶을 즐기자라는 의미로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국민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프라 비다!”라고 하면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아한다. 도무지 바쁜 것이 없어 게으른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여유로운 것이라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을 가진 작은 나라인데 그 중 1/4이 국립공원으로 조성되고 나머지의 반이 산악밀림지대이고 그 나머지 땅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햇빛이 좋고 비가 적당히 내려서인지 울창한 밀림에 6500여종의 식물과 950여종의 조류 외에도 여러 종류의 동물들, 셀 수 없는 곤충들, 수백종의 난에서 피는 꽃들은 열대의 화려한 색감과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조류학자, 식물학자, 사진작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함께 사파리를 떠나기도 하고 온천욕을 즐기기도 하고, 일정이 끝나면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코스타리카의 수도는 산호제이고 중간에 형성된 산맥을 통해 리몽이란 도시를 통해 대서양으로, 하꼬라는 도시를 통해 태평양으로 갈수 있지만 일행은 밀림 사파리를 마친 후 강을 타고 내려와 강의 끝에서 태평양을 만났다. 마침 수면으로 지는 태양으로 인한 윤슬이 바다를 향한 강 끝자락에 펼쳐졌다. 은빛 비늘처럼 반사되는 강 끝에서 방향을 틀어 맹그로브 숲이 우거진 밀림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배의 엔진 소리가 꺼지고 숨소리조차 잠재운 고요 속에 머무르는 동안 사람들은 분주함과 소란함에서 떠나 잊고 살았던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마주하였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그곳에 자유가 있었고 그리움이 더 이상 아픔이 아니라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펄럭이며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은 신선한 바람과 낮은 하늘로 다가왔다. 숨마저 멈춰버린 맹그로브 숲에선 만져지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하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얼마 후 별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하늘가로 보랏빛 노을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풍경 속에서 힘든 그대 이름을 부르고 있다. 어서 일어나라고. (시인, 화가)       *맹그로브 숲의 고요     물이 찰랑임을 멈출 때, 숨도 멈추고 말아 / 물은 물을 잠재우고, 나는 나에게 저무는 고요 / 다리 긴 도요새는 정물처럼 숲 가운데 숨었다 / 맹그로브 뿌리에 물고기가 산란하고 / 산소를 뿜어내는 뿌리와 친해지는 시간 / 강 기슭은 하얀 날개를 덮어 하늘이 되었다 / 빌딩의 숲이 답답하다던 너의 푸념 / 정글의 숲으로 이어지는 아! 자유 / 강은 적막으로 오는 소리 없는 징후       별들의 눈물을 보았다 / 수면을 닿을 듯 날아 노을로 가는 / 밤볕이 들고, 별빛이 흘러 / 새들의 잠자리가 되는 맹그로브 숲 / 가슴에 와 닿지 않으면 쉼은 숨으로 쉴 수 없기에 / 바다를 만나는 강의 끝에서 부르는 너의 이름 / 물이 찰랑거릴 때 숨은 다시 멈추고 / 소리 없이 찿아드는 적멸의 소리 / 알지 못하는 것들의 희미함에 옆에 있어도 / 그리운 맹그로브 숲의 고요     노을이 한꺼번에 지면 안되는 거야 / 밤이 한꺼번에 찿아오면 안되는 거야 / 가난한 사람들의 우산처럼 / 자유의 한계와 너라는 통증을 견디고 있는 중 / 나는 닫혀 있고 너는 열려 있다면 / 나는 열려 있고 너는 닫혀 있다면 / 나즈막한 사람들의 착한 숨소리 / 반 나절은 네게 기대고, 반 나절은 내게로 기우는, / 그리하여 쉬지 않고 그리워할 수 있으니     신호철신호철 풍경 맹그로브 뿌리 조류학자 식물학자 엔진 소리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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